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1908 런던 올림픽 (문단 편집) == 각종 에피소드들 == * 대회 기수로 기산되는 정식 대회는 아니지만 [[1906년]]에 [[1906 아테네 중간 올림픽]]이 있었다. * 런던 올림픽은 많은 신기록을 토해내었지만, 진정한 영웅은 아마도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미국 펜실베이니아 출신의 주교일 것이다. 영미간의 과열 경쟁으로 인해 육상 400m의 파문이 발생하자 이 사건의 희생자인 미국의 세 선수들에게 '''승리보다도 참가가 더 중요한 것'''이라고 설교함으로써 올림픽의 영원한 구호를 탄생시킨다. 그 내용을 전해 들은 쿠베르탱은 IOC 위원장은 그 말을 인용하여 '올림픽 경기에서 중요한 것은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참가하는 것이다. 인생의 본질은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훌륭하게 투쟁하는 것이다.'라는 경구를 널리 퍼뜨린다. 이후의 올림픽에 면면히 이어내려온 이 정신은 스테이트 아마추어리즘과 프로페셔널리즘 앞에서 날로 무력해지는 면도 있지만, 여전히 올림픽에 있어서 어떤 것 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명제로 남아 있다. * 종교적인 이유로 주일의 경기를 포기하는 사례도 이 대회에서 심상지 않게 일어났다. 주일 경기를 차마 포기 할 수 없었던 미국의 포레스트 스미손은 일요일 경기에 성경을 손에 든채 경기에 임해 110m 허들에서 세계신기록(...)으로 우승한다. * 특이한 점이라면 당시 신규종목중에 '''피겨 스케이팅'''이 존재했다. 겨울스포츠가 추가되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지난 대회때 나왔지만 당시는 동계 올림픽이 없었기 때문에 피겨스케이팅도 하나의 종목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것. 물론 [[1924 샤모니 동계올림픽]]이 생기자마자 바로 동계올림픽으로 옮겨졌긴 하지만... 여기서 니콜라이 파닌[* 1872-1956. 피겨스케이팅 뿐만 아니라 사격에도 능하여 제2차세계대전 중에는 소련군 스나이퍼들을 육성하기도 하였다. 당시 피겨스케이팅은 정해진 루틴대로 해야 하는 정규프로그램과, 자신이 직접 루틴을 짜는 특별프로그램이 있었는데 그는 특별프로그램에서 금메달을 땄다.]이 [[제정 러시아]] 유일의 금메달을 수상했다. * 신규종목도 꽤 추가가 되었으며, 요트라든가 하키, 워터 모터스포츠까지 종목으로 채택되었을정도. * 영국은 이 대회에서 홈 버프와 선수 버프를 받아 금메달 56개로 1위 차지. 지금까지 영국이 기록한 최고 기록이다. 2위 미국과 무려 33개 차이. * 같은 시기 런던에서 5월 14일부터 10월 31일까지 프랑코-브리티쉬 만국박람회가 치러졌는데, 펜싱이 이 박람회의 행사장에서 치러져서 아예 만국박람회하고 따로 열렸다고 할 수는 없었다(…) 물론 전 두 대회에 비하면 낫지만. [[분류:1908 런던 올림픽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